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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난초, 지초, 쓰레기』

난초, 지초, 쓰레기


난초와 지초가 자라나는 섬을 일컫던 난지도(蘭芝島)는 1977년 매립 공사를 통해 육지로 탈바꿈했다. 급속도로 성장하는 서울시의 쓰레기 처리를 위한 부지로 갑작스레 용도가 바뀌면서 이곳에는 1978년부터 1993년까지 총 1억 1,050만 톤의 쓰레기가 모인다. 거대한 산 두 덩이의 부피는 9,197만 2,000세제곱미터, 높이는 해발 98미터에 이르렀다. 지금은 생태 공원으로서 서울시민의 휴식처가 된 이 쓰레기 산은 지난 15여 년이 층층이 쌓인 거대한 모래시계에 가깝다. 서울시민의 폐기물이 만들어낸 아수라장은 20세기 후반 서울의 모습을 가지런히 정리한 역사의 결정체인 셈이다.

그렇다면 21세기의 스무 번째 해는 지금 어떻게 기록되고 있을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19 펜데믹 속에서 우리는 각종 소셜 미디어를 통해 각종 정보와 가짜 뉴스가 뒤섞인 엉망진창을 매일 마주한다. 전자화된 두뇌를 해킹당하는 사이버펑크한 범죄보다는 잘못된 정보와 편향된 믿음으로 점철된 데이터를 신뢰하고, 고해상도로 짜깁기된 영상은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시간의 의미는 무색해지고, 천문학적인 단위로 소비되는 데이터는 흔적 없이 사라진다.

이곳은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기술 지원을 통해 온라인에 마련된 가상의 난지도로, 2020년을 추억하는 URI(통합 자원 식별자), 즉 웹사이트 또는 웹 페이지의 주소를 난초, 지초, 쓰레기 삼아 쌓아두고 열람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목적과 달리 사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입력 창에 올바른 URI를 입력하거나 누군가 등록한 URI를 클릭하거나 터치하며 2020년을 되돌아보는 것뿐. 등록은 실시간으로 이뤄지므로 사용자에 따라 이곳을 URI를 이용한 채팅 서비스로 삼는 것 또한 가능하다. 한편, URI가 쌓여가는 모습에서 지층의 단면을 떠올리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 모든 것이 수평한 데이터의 세계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고, 시간의 순서를 정리하는 일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쓰레기 산의 변화와 기록이 하나의 선례로 작동하는 사실처럼 먼 훗날 데이터의 쓰레기장에서 누군가 발견한 시간의 기록이 그 시대를 조망하는 도구로 활용될지 모른다.
기획 및 기술 지원: 민구홍 매뉴팩처링
진행: 취미가
리서치: 곽이브, 김익현, 돈선필, 압축과 팽창(안초롱, 김주원), 장종완
후원: 서울시,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