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gram

[전시] 《숏서킷》곽이브, 김동희, 돈선필, 정유진

《숏서킷》

곽이브, 김동희, 돈선필, 정유진


기간: 2021년 1월 28일(목) ~ 2월 28일(일), 매주 월요일 및 구정 당일(2월 12일) 휴무

관람시간: 오후 3~9시.

장소: 취미가 趣味家 Tastehouse 2F,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17길 96 201호

입장료: 3,000원


2021년 1월 28일부터 2월 21일까지 취미가에서 《숏서킷》이 열린다. 지난 2020년은 모두에게 이상한 시간이었다. 20세기 각종 SF 소설과 만화, 영화에서 상상하고 설정해 두었던 ‘퓨쳐’, 2020년은 화려하고 황폐한 유토피아-디스토피아였다. 하지만 막상 도래한 2020년은 인류 단위의 재난이 슬그머니 퍼트려져 멈추지도 나아가지도 못한 채, 간신히 일상을 유지하려 애쓰며 각자의 삶을 견뎌낸 시간들이었다. 경험 속의 시간은 선형과 비선형으로 엉키고, 서 있는 위치와 동선을 지나쳐 기억되고 망각된다. 기억의 시간은 기록으로 역사가 되어 공통의 경험인 양 치부되기도 하고, 개인의 서사 속에서 재구성되기도 단락되기도 한다. 기념비와 기념물은 특정한 과거를 상기시키며 현재를 잇는 매개물로 작동한다. 지나간 시간의 조각들을 그러모아 재현한 물건이나 이미지는 과거를 현재화하고, 미래의 수집가들에게 선별되기도 한다. 2020년의 시간은 지금도 연속되고 있다. 

 

-곽이브(b.1983)는 주로 도시에서 목격한 건물에 반사된 빛의 풍경을 재현했다. 〈면대면〉 시리즈는 그렇게 창문에 비친 이미지를 1픽셀처럼 산업용지에 대입 출력하여, 이어붙이고, 접고, 벽과 기둥에 둘러 다시 창문으로 이루어진 평면의 조형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면대면 3〉은 《평면탐구》(2015) 전에 공개했던, 작가가 빛조각이라 부르는 종이 작업을 다시 출력해, 하나의 종이 앞면과 뒷면을 재배열해 액자-창문에 담았다. 〈쿠키〉 시리즈는 캔버스를 창문으로 의태한 채, 물감을 색이 있는 특정한 물질로 상정해 눌러 펴 바른 페인팅이다. 가령 〈쿠키-이탈리아〉 시리즈는 2010년 첫 개인전을 위해 준비해둔 이탈리아산 흙이 주안료로 들어간 유화물감을, 〈쿠키-하늘의 구조〉는 〈하늘의 구조〉(2016) 을 준비하며 구입해둔 물감을, 〈쿠키-창창〉은 《흰머리》(2017)의 페인팅에서 남았던 검은색 물감을 흰 창틀이 그려진 캔버스에 펴 바른 그림들이다. 특정 시기의 작업을 위한 물감은 작가가 기억하는 시간을 머금고 창문이 그려진 오브제에 씌워진다.

 

2010년대 한국, 특히 서울에서 경험하는 미술의 사이클은 너무 빠르게 반복되고 있다.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발표되고, 정산되는 각종 문화재단의 기금 행정에 맞추어, 대다수의 미술인들이 한해 한해의 작업사이클을 조정한다. 자립하지 못하는 미술 공간들 역시 그 속도에 맞추어 미술가들과 불과 몇 달 안에 일정을 계획하고 진행한다. 그렇게 생겨나는 수많은 짧은 서킷들에 각자의 몸을 싣고 달리기를 반복한다. 전시와 공연의 달리기는 혼자 할 수 없다. 작가 본인을 포함한 수많은 조력자가 작업을 보여주기 위한 기반 조건(공간, 설비, 설치, 홍보, 그래픽, 기획, 텍스트, 진행, 아카아빙 등)을 건설해낸다. 그리고 1달이 채 안 되는 시간이 지나면, 또 다음 팀이 달려 들어온다(가끔 팀이 아닌 무서운 경우도 있다). SNS와 연동되어 더욱 빠르게 소비되고, 지나치는 이 짧은 서킷의 달리기는 장점도 있지만, 명백한 한계가 있고 사람이 소진된다.

 

-김동희(b.1986)는 작업, 전시, 공연이 이루어지기 위한 지지체 자체를 매체 삼는다. 물리적 지지체를 세워 건설하고, 변용하기도 하고, 조력자들과 함께 시간-기회의 지지체를 만들어 작가, 기획자들이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조직한다. 이때의 지지체는 일종의 전유적 프로젝션일 때도, 의사 건축물일 때도, 작은 구조물일 때도 있는데, 작가는 시공간적 유연함과 합의점을 찾아낸다. 〈Sequence Type: 1〉은 2020년에 《아트 스트릿》, 《홀(HALL)》, pr,op등의 전시와 공간에서 동선을 구획하고 시야의 개폐에 개입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Sequence Type: 3〉은 《다른 곳》(2020)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반사하는 계단-의자 역할을 하던 구조물의 부분 조각이다. 그리고 〈Ground Layer〉는 2014년 빈 땅을 찾고 모아 기획한 작가의 첫 개인전 《나열된 계층의 집》(2014)의 무대로 사용되었던 그리드 작업을 취미가 2F의 바닥에 재구성하였다. 각각 다른 곳에서 사용되었던 지지체작업들은 《숏서킷》에서 마치 원래 취미가 전시장의 일부였던 것처럼 레이어링 된다.

 

 데이터 연산 처리 과정에서 쇼트서킷은 조건을 만족하면 불필요한 연산을 생략하고 건너뛰어 최종 연산에 더 빠르고 안전하게 도달하도록 한다. 사람의 기억은 디지털 데이터의 저장 연산과 달리, 냄새, 단편적 이미지, 햇살의 따가움, 초조한 목소리 같은 것들로 종합되어 조각나 있다. 그것을 회상하고 복기하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자잘한 변형과 왜곡이 발생하고, 기억의 조각을 연속으로 꿰매면서 조건에 부합하는 서사나 역사를 구성해낸다. 그렇게 정리된 이야기는 타인에게 설명하고 전달하기에 꽤 효과적이다. 하지만 서사 밖의 사건은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종종 작가들은 자신의 손에 닿는 것들을 선택하고, 소비하여 확정과 확장의 갈등지점을 구현해보려 한다. 그것은 일종의 지표적 증거물인 것처럼 기능하기도, 새로워 보이는 스킨이 덮인 기념비처럼 보이기도 하다. 마치 불과 연기 사이의 관계에 비집고 들어가 구해낸 돌멩이처럼 뜬금없고 생경한데, 지나간 시간의 맥락을 끌어안고 조용히 계속 증언한다.

 

-돈선필(b.1984)은 개인을 감싸고 있는 세계 경험의 사건이나 시간의 일정 구간을 건져내어 영상이나 오브제로 체현하고 재구술한다. 이때 물화된 기념물은 서브컬쳐 콘텐츠의 굿즈로 생산되고 유통되는 ‘피규어’가 존립하는 형식을 모방하며, 오브제 바깥에 걸쳐 있는 영역의 교집합을 불러낸다. 〈사족보행 택배상자(FFWP)〉는 작가가 운영하는 가상의 피규어 상점 ‘끽태점’의 상품을 운반한다. 상자는 주문자의 목적지를 향해 가지만 고양이처럼 늘어지고 기지개를 피거나, 넘어지기도, 늠름하게 모여 서 있기도 한다. 언젠가 도착할(때론 소실될) 택배 상자는 주문자가 목격한 모니터 상의 이미지와 유사한 물건을 품은 채 상상과 재현된 현실의 거리를 좁혀간다. 〈상자유령피규어〉는 사라지는 종이박스에 대한 도시 괴담을 엮은 1+1 책자의 파생물로 《BOX gHOST》(2014)전에 처음 등장하여, ‘g8ds’와 《굿-즈》(2015)에서 전시되고 판매되었다. ‘반지하’나 서울 골목길의 단편적 기억은 기묘한 픽션의 굿즈-조각으로 떨어져 나와 서성이다 유통되었다.

 

개인이 체감하는 시간은 명백히 다르지만, ‘동시대’로 뭉뚱그려 함께 살고 있다. 각자의 눈앞에 닥친 재난과 일상을 소화하고, 그레고리력으로 구획된 시간을 반복한다. 거듭되는 불화는 함께하는 타인의 존재를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게 하고, 그렇게 부딪히고 교차된 시간의 레이어는 서킷 바깥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전기회로가 낙후되거나 잘못되면 쇼트서킷이 일어나, 과전류가 발생한다. 이때 차단기나 퓨즈가 작동하지 않으면 회로 밖으로 전류가 넘어가 화재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시스템이 정상 작동되기 위해서는 원활하고 건강한 순환이 필요하다. 지난 10년간 수많은 개인이 각자의 레이어에서 시스템의 회로를 연결하고 건설하기 위해 부단히 활동해왔다. 여전히 끊임없이 ‘쇼트’되는 현장을 지켜보고, 복구시키거나 아예 새로운 회로나 연결부를 만들어보려 하고 있다. 예술은 그곳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작게는 개인의 역사를 기록하거나, 크게는 순환의 매개체가 되어왔다. 그것은 어쩌면 각자가 이지러지고 엉켜 포개어진 폐허 속 레이어의 지층을 발굴하는 것일 수도, 새롭게 구축하고 단단한 땅을 만드는 수행을 조명하고 논의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정유진(b.1995)은 대중매체에서 보여지는, 산산이 조각나고 부서지는 파국의 이미지를 경유하여 물화시키고 열화된 오브제를 흩뿌려 폐허의 풍경을 재현한다. 〈무자비둥〉은 《유어서치, 내 손 안의 리서치 서비스》(2019) 전에서 홀로 서 있던, 인재로 말미암아 터진 커다란 불기둥이 모티브인 구조체-오브제다. 《숏서킷》에서 〈무자비둥, (2021 취미가 ver.)〉은 폭발의 조각-이미지들을 다시 파편 내어 전시장 이곳저곳에 던져 놓듯 붙어있다. 〈폭삭벽〉은 돌무늬 종이를 구기고 접어 만든 벽돌 모양의 곽이다. 쌓아 올리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종잇조각 〈폭삭벽〉은 《방공호는 대공분실》(2017), 〈해적판 미래〉(2018), 《적어도, 현실답게》(2019)에 계속 등장하여 파산한 가짜 현실의 풍경을 만들었다. 재난이 지나간 후 사람은 소거되고, 작가는 폭발과 무너진 잔해의 스펙터클을 조합해 현실과 픽션 사이에서 이미지의 원인을 더듬는다.


참여작가: 곽이브, 김동희, 돈선필, 정유진

기획: 취미가

시각 디자인: 신신 (신해옥, 신동혁)

사진기록: 홍철기

영상기록: 손주영

후원: 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