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gram

[전시] 차슬아 ‹Ancient Soul++›

차슬아
Cha Sla

‹Ancient Soul++›
 


> 기간: 2018. 7. 26(목) ~ 8. 26(일), 매주 월요일 휴무

> 시간: 3~9PM

> 장소: 취미가 趣味家 Tastehouse 2F,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17길 96 201호

> 입장료: 3,000원

> 오프닝 리셉션: 2018. 7. 26(목) 5~8PM


글: 현시원

시각 디자인: 신신 (신해옥, 신동혁)

공간디자인: 힐긋

사진: 홍철기

영상: 손주영

주관: 취미가

후원: 서울문화재단


> date: 2018. 7. 26(thu) ~ 8. 26(sun), Closed on Mondays

> time: 3~9PM

> venue: 취미가 趣味家 Tastehouse 2F, 201ho, 96, Donggyo-ro 17-gil, Mapo-gu, Seoul

> ticket: ₩3,000

> Opening reception: 2018. 7. 26(thu), 5~8PM


text: Seewon Hyun

visual design: Shin Shin (Haeok Shin & Donghyeok Shin)

space design: Hilgeut

photograph: Hong cheolki

video recording: Son Jooyoung

organization: TasteHouse

sponsor: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민주적 진열 : 차슬아  

글 현시원

   

1 민주적 진열

표범은 영양을 잡으면 나무 위에 올려둔다. 하이에나들이 훔쳐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청솔모는 땅 속에 씨 저장고가 매우 많은데 가끔 어디에 숨겼는지 기억조차 못 한다. 들쥐는 굴속에 먹이를 저장하는 특별한 방을 갖고 있고 배가 고프면 안으로 들어가 씨앗을 찾고야 만다. 늑대는 먹이가 남으면 남은 조각을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다음 날 찾아와 꺼내 먹는다. 두더지의 먹이 창고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지렁이들로 가득하다. 동굴 속의 두더지는 지렁이를 저장하기 전에 입으로 꽉 깨물어서 기절시킨다. 이 모든 기술적 문제들은 저장의 관습을 다룬다. 어디에 식사를 두었는지 몸으로 기억을 못 하는 시간성,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하거나(굴 속)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하는(나무 위) 공간성을 구조화한다. 가장 간편하게 저장과 섭취를 해결하는 동물은 햄스터의 먹이 주머니다. 씨앗과 열매를 집으로 가져올 때 양 볼에 숨겨온다. 몸 안에 사물을 임시적으로 넣어 영구적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햄스터는 집에 도착한 다음 입을 크게 벌려 양 볼 가득 가져온 씨앗들을 앞발로 꺼낸다. 양 볼을 부풀려 씨앗을 담고 있는 모습을 사람들은 귀엽다고 착각한다. 자신의 몸을 먹이 저장고로 삼는 사이 발생한 일이다.

 

2 눈앞에 있음

차슬아의 작업은 결과적으로 눈앞에 있는 것들을 진열한다. 또 동시에 진열을 눈앞에 있는 것들로 다룬다. 차슬아는 작업 크기에 맞는 칸을 가진 진열장을 만든다. 정면으로 바라볼 만한 위치를 기준으로 하여 조각들을 도열한다. 안인용이 임시/영구 진열을 위한 일체형의 그것이라는 글에서 일체형 조각을 위한 가상의 저장소라고 언급했듯이 그의 작업은 개별 작품을 만드는 것에서 완료되지 않는다. 설치를 위한 조건과 공간의 관람/경험 장치를 컨트롤하는 것이 차슬아의 주요 매체다. 물론 작업실을 벗어난 곳에 자신의 작업을 위치시키는 방법론의 충동과 충돌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차슬아는 사물이 인간보다 더 많이 사고하고 더 멀리 가고 더 강력하게 움직이는 시대에, 자신의 전시 시스템을 손으로 만든 사물 조각들 안에 포함시킨다. 모형 복제와 재료 연구에 상당한 경험과 기술을 장착한 차슬아는 재료 자체의 특성에 주요하게 반응하는 유희적 작업을 한다. 동시에 그 유희에 끝 선을 긋는다. 끝이 있는 반복적 만들기로서의 놀이란 무엇인가? 만드는 기술을 반복적으로 통제하고 절제시킴으로서 작업의 규모를 경제적으로 해결한다.

 

사물 조각들이라는 표현은 적절할까? 차슬아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그것은 아이템이다. 아이템은 게임에서 주체를 격상시키고 일련의 서사를 죽였다 살리는 시스템의 구체적 현물이다. 또 실제 생활에서도 특정한 목적에 부합하는 데 기능하는 장착형 도구들이다. 차슬아가 자기 손으로 만들어 진열장에 위치시키는 사물은 눈을 가늘게 뜨거나 크게 굴려보는 해상도 변환이 필요 없다. 중요한 것은 해상도가 손안에서 컨트롤 된다는 점이다. 보이는 관상용 식물이 아니라 물을 주고 만져줘야 하는 가상의 애완용 식물과 유사하다. 차슬아의 아이템은 시각과 촉각이 결합되어 있다. 게임에서든 작가가 방문한 현실의 광물 상점에서든 불시착했다는 느낌을 제외하고 나면 아이템을 향한 총체적 감각은 부서진다. 아이템은 떼어낸 살점처럼 미완의 사물이다. 피를 막 걷어낸 것 같은 도려낸 부분에서 남는 것은 다른 이야기에서 재활용 될 가능성이다. 무생물인 사물은 인간 주체와 현실의 사연/사건을 잇는 증거물이다. 차슬아가 만든 <고기보석>의 둥근 조색 우레탄, 석분점토로 만든 <뼈다귀>, 스펀지로 만든 <치즈> 등에는 비장하거나 부감의 전지적 시점의 스토리텔링에는 기능을 하지 않는다. 전체 서사에 조력하지 않는 차슬아의 아이템은 그래서 독립적인 조각이다.

전시장에서 차슬아의 작품은 늘상 그리고 원래 거기 있었을 법한 근접 거리에 자리한다.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첫째 조각 사이즈에 맞는 칸을 만들어 배치함으로써 위치와 사이즈가 합일을 이룬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때 차슬아의 조각들은 눈앞에 있음에서 손에 닿을 수 있는 상태의 이미지로 쉽게 치환된다. 이동 속도가 빠르고 가벼울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차슬아는 하나의 조각이 아닌 복수의 리스트들을 눈앞에 배치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 리스트들은 어떤 계열들 간의 화합을 이루는 대체제 또는 후보제로서 각자의 위치를 필연적이고 안정적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가격 비교 또는 성분 비교에 유용한 것이다. 작가는 아이템 조각들의 진열장이 필요해 기거할 곳을 마련해준 것처럼 보인다. 달리 비유해보자면 귀중한 사물이든 혹은 그 반대든 가치의 재판장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비결정적 상태에 방황할 여분을 잘라냄으로써 문제 해결을 해주는 것도 같다.

 

 

3 살점 하나

토마스 호빙(Thomas Hoving)은 1967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관장으로서 민주적인 전시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민주적이며 동시에 대중적인 전시를 하기 위해 그는 창고 여러 곳을 열어젖히기 시작한다. 전시장이 아닌 컬렉션 수장고였다. 보관된 컬렉션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데 있어 유연하고 보다 확장할 것을 선언했다. 관장은 마리 앙트와네트가 키우던 강아지를 위한 집을 전시에 배치했다. 1775년에서 1880년 사이 가구 제작자인 장 뱁티스트 클로트 센네(Jean Baptiste Claude Sene)는 파란 벨벳에 너도밤나무를 활용해 정사각형(54.6cm)에 높이 78cm의 작은 강아지 집을 만들었다. 호화스러운 금장식에 몇 번의 백 년이 지나도 녹슬지 않는 디테일한 장식들은 보석 덩어리이자 세밀한 당대의 손놀림을 전시했다.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그와 유사한 강아지 하우스를 꾸민 이들도 있었을까? 한 논자에 따르면 민주적이기는커녕 역행했다. 호화를 추구하는 독특한 하나의 사물이 가진 위엄은 전시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민주적 진열과 수평적 디스플레이는커녕 그것은 ‘밥이 없으면 빵을 먹으라’는 마리 앙트와네트만이 귀여워하던 한 마리 강아지의 행운과 사주를 견제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4 선택(decision making)

차슬아가 조각을 만들고 배치하는 사이 어떤 일이 발생할까. [Ancient Soul++]에 배치된 나무 책장과 벽선반, 가벽, 제단형 좌대 등을 조율하는 차슬아의 시간을 선택과 발주로 불러보자. 무엇보다 선택은 재료와 제작 과정, 직접 몸을 움직여 작업의 거의 대부분을 만들어내는 수공예 적이고 실용적인 차슬아의 입장을 나타낸다. 2016년 작성한 차슬아의 학위 논문을 읽어보자. “작업이라는 넓은 세계의 편린을 본인이 직접 다룰 수 있는 무엇으로, 본인의 선택과 폭으로 치환 가능한 것으로 편집해내는 지금의 태도가 개입되어 있다.”고 적은 작가는 다루기 쉬운 것으로의 치환 행위를 인지하면 때때로 많은 것들이 선명해진다. 팔을 벌릴 수 있는 폭에 따라 작업이 함께 변이한다.”고 덧붙였다. 차슬아의 논문에서 선택은 ‘decision making’이라는 단어로 번역된다. 그는 선택을 해내는 과정에서 작은 디테일의 최소단위에서 하나씩 확장해가며 작업의 위계질서를 만들어낸다. 이번 전시에 입장해 작업 면면을 살펴보자. <2종 혼합석> <4종 혼합석> <가죽 분홍>, <가죽 하늘> <가죽 브라운> <계란보석 물> <계란보석 불> <계란보석 풀> <계란보석들> 등등이 도열하여 있다. 광물, 무기, 음식, 기운을 비호하는 물체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광물이기는 하나 <먼지석> 같이 시적(언어) 게임을 하다 탄생한 돌연변이들도 있다. 회색 먼지들이 엉켜 붙어 덩어리가 된 형상을 하는 이 작은 조각은 차슬아의 선택과 발주 중 잠시 개입한 발견 게임/놀이를 보는 듯 하다. 수직수평으로 진열된 그의 인벤토리는 대량 정보의 등가적 위치들을 연상시킨다. 이를 보고 있자면 사실 앞서 언급한 구분이라든가 세부 차이들보다 형태, 재료, 명명 등에서 유사성이 먼저 느껴진다.


이 선택은 의아하지 않은가. 하나의 사물이 조각으로 존재할 때 겪는 치환은 여러 조각들이 한꺼번에 존재할 때 등가적이 된다. 마치 인터넷에 존재하는 동명이인이 만 명으로 확대되든 억 만 명이 되던 구분되지 않고, 온라인 수박을 툭 두드려 깨지 않는 이상 절대 맛을 알 수 없는 것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여럿이 있어서 개별이 구분되지 않는다. 패턴은 반복되며 먼 옛날의 빗살무늬 토기처럼 어느 하나의 양식을 발견해내기 불가능하다. 따라서 특정 사물을 통해 인간의 행동 방식을 유추하는 것이 무의미하며 대량 정보로서의 사물 이미지에 노출되었다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차슬아의 조각들이 하나씩 늘어날 때 하나 하나의 아이템 조각이 가진 독자적 가치는 하락한다. <러프컷 루비>, <러프컷 아쿠아마린>, <백기둥>, <백색의 지팡이>가 변주되어 자신의 요원들 또는 피 안 섞인 자식들을 만들어낼 때마다 그것은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으로서 전시용이 아니다. 그것은 다시 사용할 수 있고 복제될 수 있다는 감각으로서 눈앞에 살아난다. 그러나 구매하고 사용하는 감각보다 중요한 것은 차슬아의 가벼운 수학적 사고다. 매우 간단하기 이를 데 없는 최소한의 다이어그램이 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업 리스트에 스몰(S), 미디엄(M), 라지(L)로 표기해 엑셀 리스트를 만들기도 했다. 기초 상식으로서의 수학적 사고가 꽤나 엉뚱한 곳으로 도약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5. 컬렉션

동시대 미술에서 미술관 및 공적 사적 기관의 컬렉션은 당대의 현실을 해석하는 일종의 ‘무기’로 종종 은유되기도 한다. 어떤 미술품을 컬렉팅하고 어떻게 전시하느냐에 따라 미술관과 해당 사회가 가진 시간에 대한 감각, 역사적 인식이 반영된다는 것을 여러 이론가들이 거듭 논한다. 흥미로운 점은 차슬아가 자신의 추상적 사고의 한 목표로 “풍조와 뉘앙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대목이다. 그는 자신의 학위 논문에서 자신의 작업 목표가 “풍조와 뉘앙스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고 적은 바 있다. 한편 개별 조각들이 지금 눈앞에 놓인 범주를 벗어나거나 시야에서 사라질 때 차슬아는 발주처이자 1인용 발주업체가 된다. 손안에 있는 도구와 재료들을 통해 다시 이 아이템 조각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자기 자신에게 발주 명령을 내리는 듯한 작가는 가상의 컬렉션을 위한 엑셀 리스트를 한 칸 한 칸씩 늘려나가듯이 사물의 용량을 확보한다.

 

6. 인벤토리 창

건축에서의 도면과 전시장에서의 도면은 분명 차이가 있다. 전시장 도면은 전시가 열릴 때마다 작품의 배치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임시성을 띈다. 개별 전시마다 관객들에게 배포할 용도로 제작되는 전시 도면은 물론이거니와 전시 기관에서 보유하고 있으며 때로 공간 홈페이지 등에 JPG 파일로 올라가 있는 공간(건물) 도면도 사실은 임시적이다. 전시에 따라 가벽을 세우는 특유의 공간 조율이 현대미술을 둘러싼 전시 공간에서는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통상 전시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데 있어서 가벽 공사는 작가의 의지에 의해 혹은 기획 전시를 총괄하는 큐레이터의 공간 구획 방식에 따라 새롭게 세워지고 또 허물어진다. 새로운 기능주의 다이어그램이 건축 담론에 체계적으로 등장한 것은 1930년대였다. 1930년대 제작된 <부엌 계획의 응용 동작>은 커피 케이크를 만드는 일을 과정 표로 제시한다. 찰스 램시와 해럴드 슬리퍼가 만든 <전형적인 부엌 레이아웃 연구>(아메리칸 아키텍트, 19337)는 쓸모없는 움직임을 최소화시킨 부엌의 기본 배치와 모양에 집중한 다이어그램을 보여준다.


차슬아의 <Ancient Soul++> 전시장 도면에서 업그레이드되는 것은 무엇인가? 특정한 풍조와 만연한 뉘앙스를 사로잡는다고 느끼는 주체는 과연 무엇에 도리어 사로잡히고 무엇과 싸우고 있을까? 차슬아는 <Ancient Soul++>을 방문의 장소로 치환한다. 차슬아가 만든 전시장의 도면은 입체적인 실제 공간에 구현되었으나 철저하게 게임의 인벤토리 창(window) 공간에 영향을 받았다. 천정의 높이를 알 수 없는 인벤토리 창은 그러나 광활한 시간의 바다 위에 주체를 던져놓는다. 사각형 프레임의 공간의 제약은 땅굴을 파는 식으로 아무데서나 시간을 줍는다. 국가의 영토도 기후의 변화도 언제나 유동적이며, 변이 자체가 매 초 매 순간 일어나는 곳에서 차슬아는 순간 발현하는 아이템들을 만들어놓는다.

7. 투명 조각
이 아이템들의 결정 기준은 투명성이다. 광물을 묘사하는 작업에서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산업재에 사용되는 재료들이 자신의 속(내부와 결정체)을 보여준다. 효과가 한 눈에 보여야 하고 물질적 현존이 탄생설화까지 알려줄 수 있는 힌트가 시각적으로 장착되어 있다. 차슬아가 만든 <용암도><게르만스톤>은 투명하다. 그러나 더 투명한 한 점의 조각이 있다. 그것은 스티로폼과 레진으로 만들어진 24 x 20 x 28cm 사이즈의 <알 원본>이다. 그것은 윈도우에서 입체적으로 튀어나온 입체물이며 차슬아가 소유하고 싶었던 무엇(thing)’이다. 이 무엇이 무엇인지 타인에게 답을 구하려 하지 말자.